보 길 도 윤선도의 자취를 따라서~
조선 중기의 시조작가이자 문신. 서울 출생. 본관은 해남(海商).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낸 유심(唯深)의 아들이며,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유기(唯幾)의 양자이다.
8세 때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어, 해남으로 내려가 살았다.
당시 금서(禁書)였던 〈소학(小學)〉을 보고 감명을 받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18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20세에 승보시(陞補試)에 1등 하였으며 향시와 진사시에 연이어 합격하였다.
13년간 보길도에서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 다섯을 친구로 벗삼았던 고산 윤선도~
그의 시조 어부사서지' 정자를 짓고 인공연못을 만들어 풍류를 즐기던 세연정'
옥소대와 길에서 바라보면 오른쪽 산 중턱 정자에서 고산이 차를 마시며 풍광을 즐기던 동천석실'
보길도는 고산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땅끝마을 ..
쌀이 유난히도 찰지고 맛있었던 집에서 남도의 음식맛을 제데로 느끼고,
단잠과 함께 이른아침 보길도로 향하는 아침 8시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섰다~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되고..
물이 차면 섬이 되는..
선착장 옆에 있는 이 쌍둥이 바위를 한컷 남기려다..
나무 데크 계단끝에 표시된 노랑선을, 평면의 중앙선으로 착각하고 내 디딘 발이 순간...그만..
우르르 사람들은 몰려 들었고..
바깥쪽으로 완전히 꺽인 왼발은 한참을 움직일 수 없는 통증이...
세상 참 좋다~
얼떨결에 선 자리에 사진이 찍히더니 곧바로 옆에 걸린 액자로 넘어가~
역시 IT강국 대한민국~
전국노래자랑, 송 해 할배를
꼭 닮은 장난기 많은 이 분..
겨우, 사진 한컷 찍어 주고..
옆에서 함께 찍겠다고 심술을 잔뜩 부린다~
여행 내내 웃음 바이러스를 전해 주신 유쾌하신 분.
비가 많이 올땐 폭포로..
평소땐.. 다리로 쓰인다는 돌다리다~
산 중턱에..
동천석실이 보인다~ 이 높은 곳에서 자연을 내려다 보며..
한 수 시를 읊었을 고산 윤선도~ 그 옛날옛적에..
교과서에서 만났던 위인을 여기서 만나는 기분이 새롭다~
겨우 100여 미터 밖에 되어 보이는 않는
저기 저 위..
고산이 살았다는 집을.. 오르지 못하고.. 난..결국..
이 정자 마루에 앉아 기다려야 했다~
이미. 넘어졌을때 예감했던 바지만.. 왼쪽 발목은 심상잖은 통증에 지팡이에 의존 해야만 했고..
동네 어귀..
돌담 넘머..남의 집 너른 마당에 자꾸 욕심을 부려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