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스페인~

세비아 대성당~

하늘,바다, 그리고 나 2015. 4. 24. 22:00

 

 

 

 

 

 

 

 

세 비 아 대 성 당~

 

 

 

 

 

 

 

 

 

포루투갈의 북부 포루투에서 남부 리스본까지의 빡빡한

5일간의 일정을 끝내고..다시,, 스페인의 남부 세비아로 향한다~

 포루투갈의 북부와는 달리..남부의 지형은 평평하고..

스페인 가까와 질수록.. 비교적 비옥한 땅이 펼쳐져~ 달리는 창밖으로..

하늘엔 갑자기 초승달 모양의 태양이 떴다.

내 일생에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완전한 개기일식이다~

수없이 셔터를 눌러 봐도.. 카메라에는 그 모양이 잡히질 않아..

태양의 지극히 일부분으로,, 여전히 이 넓은 지구를 훤히 밝힐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기만 하고..

우주의 신비에.. 그 경이로움에.. 또 놀란다~

난~ 먼지다~ 눈에도 띄지도 않는 먼지~

 

 

 

 

남부로 가면..

준비해간 얇은 옷을 입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출발할때 입었던 기모바지를 여전히 갈아 입지 못한 채.. 준비해간 유일한 두꺼운 빨강색 점버를 모처럼 벗고..

비가 내리는 구질구질한 날씨에.. 얇은 가죽자켓을 갈아 입는 용기를 냈다~

 

 

 

 

 

 

 

 

 

 

 

 

세비야(Seville) 대성당, 알카사르(Alcazar, 성()이라는 뜻),

 무어인들의 영향을 받은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는 1248년의 레콘키스타(Reconquista, 국토회복운동) 시기부터

 16세기까지 지어졌으며, 안달루시아 기독교 문명과 알모하드(Almohad) 문명을 동시에 보여 준다.

대성당 옆에 서 있는 히랄다(Giralda) 첨탑은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이다. 대성당은 5랑() 식으로 되어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 건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묘가 있다.

 

 

옛 모스크 유적에서 1403년에 발견된 세비야 대성당은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7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성당은 5개의 신랑()이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 건물이다.

세비야 대성당의 종탑인 히랄다는 본래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인 모스크의 첨탑이었으며, 에르난 루이스(Hernn Ruiz)에 의해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새롭게 디자인된 탑의 꼭대기 장식은

이슬람 양식에 기독교 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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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안에..

바닥에 설치된 거울로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대성당의 화려한 천장과 우리들의 자화상~

 

 

 

유일하게 역대 왕들이..

시신을 떠받치고 있는 콜롬보스의 무덤이다~ 그것도 경건하게 고개 숙인 채..

 

만일... 콜롬버스가 이사벨여왕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사벨 여왕이 자신의 사비를 털어가면서까지 콜롬버스의 탐험을 지원해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세계사"는 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왔겠지~

 

 

 

 

 

 

 

 

 

 

 

 

 

배게의 갯수로 ..

사제단 신분의 높낮이를 나타낸다고..

 

 

 

 

 

 

 

도둑 맞았다가 다시 찾은 성화~

 

 

 

 

 

 

 

 

 

 

 

 

 

 

 

 

 

 

 

 

 

 

 

 

 

 

 

 

세비아 대성당 정원은..

온통 오랜지 나무로 ..

 

스페인의 성당들의 특징은..

다른 유럽의 성당들과 달리.. 이슬람과 오랜 공존을 한 이유로 모스크 냄새가 짙게 나~

 

 

 

 

 

 

 

 

 

 

 

 

 

 

 

 

 

 

 

 

 

 

히랄다 탑~

세비야 대성당과 붙어 있는 종탑 밑은 아라베스크 양식이며.

원래 여기가 모스크 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01년부터 성당으로 바꾸었으며.

 꼭대기 청동여신상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 히랄다가 바람개비라는 뜻임.

높이는 97m~

 

 

 

 

 

 

 

 

 

 

 

 

 

 

 

이 고무나무의 둘레가 궁금하던 차였다~

가족으로 보이는 다른 여행자들이 내 궁금증을 눈치라도 챈 듯..

 

 

 

 

 

 

이사벨 여왕이 없는

스페인의 역사는 설명 될 수 없는 듯 보인다~

 

 

 

 

이사벨 여왕~

(1501 4.22~1504.11.26)

 

 

이사벨 공주가 태어나던 당시 카스티야 왕국은

루나 수상의 부정부패로 병들어가고 있었고,. 이사벨 왕후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국왕 후안 2세 대신에

사별한 전처의 아들인 엔리케 왕자와 함께 강인한 정치력을 발휘해

이사벨 공주가 두 살 되던 해에 정변을 일으켜 루나 수상을 사형에 처한다~그러나, 

그는 이사벨 태후가 언젠가 자신을 제거하고 알폰소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거라는 두려워,

그는.. 세살된 이사벨 공주와 두 동생을 태후와 시골 마을로 유배를 시킨다..

어린 이사벨은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돌보며, 강인한 생활력을 평민들의 삶에서 보고 배우면서,,

훗날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데 밑거름이 된다~

 

지난 700여 년간 이베리아 반도는 카스티야, 아라곤, 그라나다, 포르투갈 네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역대 그 어떤 왕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한 여인..

이사벨 1세는 온 세상을 완벽한 천주교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그녀가 그라나다를 점령함으로써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은 자취를 감추었다. 비운의 그라나다는 끝까지 저항하다

이슬람 문명을 사랑하는 왕의 결단으로 알함브라 궁전을 보존하기 위해 

   지금까지 알람브라 궁전은 스페인에 피어난 이슬람 문명의 꽃으로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rrega, 1852~1909)작곡의 기타 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처럼.. 

그녀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종교 법정을 만들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역사상 강력한 제국이었음에도

스페인은 르네상스 이후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천주교는 그녀를 가둔 또 다른 울타리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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