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다시 그 역사를 살 것이다~"
우리 역사와 너무도 닮아 있어 결코 남의 얘길 수 없는 여기~
오시비엥침 제 1 수용소에서 3키로쯤 떨어져 있는,
제 1 수용소 보다 20배나 더 큰, 짐작키도 어려운 규모의 53만평 비르케나우 수용소다, 이곳에 1944년 당시
유대인, 폴란드 인, 집시, 기타 국적자로 이루어진 9만명 이상의 죄수들이 수용,학살한 장소다~
희생자 대부분은 제 2 수용소에서 학살 됐다고~
마을의 주민들을 퇴거시킨 뒤 그 가옥들을 압수, 철거하고 이 수용소를 짓기 시작해,
수용소의 유일한 목적은, 나치 우월 주의에서 나온 나치를 뺀 나머지 인종 말살!!
먹먹해진 가슴으로~
산 자에게는 단지, 잠시잠깐 감상에 젖어 인간의 잔혹성 앞에 가슴 아린 역사의 장소일 뿐이지만,
그 시대 여기 이 자리에 있었던ㅡ 수 많은 이들에게는 죽음 앞에서 몸서리 쳤을 제 2수용소의 문을 들어섰다~
염도 높은 소금물이 콧 속에 들어간 듯.. 굵은 왕소금을 심장에 뿌린 듯.. 아려 온다~
눈 자위의 후끈해 오는 열감을 느끼며..
유럽의 수 많은 성당을 들려서 온 탓일까~ 덕분일까~ 자꾸만, 나도 모르게 맘 속으로 성호를 긋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여기 수 백만 영혼들이 영원히 자유롭기를~~~
하늘은 저리도 높고 푸르건만,,
소련군의 반격에 급히 후퇴 하면서,, 나무로 된 300동 이상의 건물은 거의 불태우고,,
미처 소각하지 못한 몇 동만이 남아~ 오로지 인간 수송 목적으로만 놓여진 이 철길~
여전히.. 말이 없는 엄지~
난, 뒤만 따르며 셔터만 눌러 대 본다~
그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누군가의 시신이 널부러져 있었을 이 자리에 꽃은 피고 또 지고를 반복하고,,
8월의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 ~'저 막루 위에서
나치 병사의 독설이 들리는 듯,,
우린,,
..........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 - 1945년 4월 30일
1934.08 독일 총통, 1933 독일 수상
만일.. 히틀러 아버지가 그의 그림에 대한 꿈을 접게 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오스트리아 미술대에서 히틀러를 합격 시켜줬더라면,,
그 광기를 예술혼에 불태워,, 오늘날 피카소 명성에 버금가는 예술가의 이름으로 남지 않았을까~~~
훗날,, 참혹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달리 돌아 갔을텐데...
난,, 자꾸 가정법 " If"를 연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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