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

또레스 델 파이네

하늘,바다, 그리고 나 2025. 4. 11. 17:25

이른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만들어 먹고,

사실은 뭘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게는 밥을 저녁에 미리 냄비에 

해 뒀다가 아침은 있는 야채 이것저것 넣어, 볶음밥도 아닌, 비빔밥도 아닌..

그 중간쯤되는 다른 양념이 없어 소금간만 딸랑 맞춰서 먹은게 다 였던터라~

오늘 갈 또레스 델 파이네 왕복 10시간이 넘는 산행에

주먹밥,과일과 물 정도 도시락을 싸서 챙겨 나오기 바빴으니..

랜트카로 얼마간 달려 산 입구에 도착해 내리자마자 일행들은,

마치 달리기 스타트점에 선 선수들처럼 튕겨나가듯이 산을 오른다.

그들의 평균나이는 60대 초반- 저들이 이상한 거라고. 

산을 오르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을 둘러봐도 대부분 젊은층이다.

마음이 조급하지도, 못 따라 갈까 불안하지는 않았다.

단지,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난,적잖이 당황했고,

발걸음은 무거워 한걸음 한걸음 내 딛는것조차 힘들어 출발점부터

거의 포기에 가까웠으니..이미 예상했던 바다.

한참을 오르던 룸메가 다시 내려와

내가 먹을 점심 도시락을 던져 주고 가다시피 한다.

내가 정상에 오르지 못할 걸 이미 예상했고,

중간 산장에서 기다리겠노라 말해뒀으니.

 

 

 

 

 

 

 

 

내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나를 앞 지르기를 무한 반복하는데,

돌길을 한걸음 한걸음 내 딛기가 내겐 너무 버겁다.

유달리 체중이 많이 나가 보이는 젊은 여자의 발걸음이 나보다 훨씬 더 무거워 보이는데,

최소한, 내가 저 여자보다는 앞지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살짝든다~

 

전망좋은 산 언저리 돌위에 앉아

바나나 한입 베어 물으니 떨어졌던 당이 올라 오는 걸 초 단위로 느낀다.

또 얼마간 올라가다 나무 그늘에 앉아 겉옷 하나 벗어 제치고,

올라 온 먼길을 돌아보니 멀리 호수가 하나가. 눈 앞엔, 민들레를 닮은 노란꽃이,

또 조금 오르다 목을 축이려 물 한모금 마시며 쉬자니,

앞만 보고 내달려 올라 간 친구들은 이 길가에 핀 꽃도 못봤을 거라고,

빙하 위 구름이 유영하는 것도 못 봤을 거라고,

살가운 이 바람도 못 느꼈을 거라고..

망중한을 즐기는 나만 느낄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애써 위로를 해가며.. 홀로 산길을 오르다 쉬다를 반복하는데..

 

 

 

 

 

좌로는 절벽, 우측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빙하가 녹아 흐르고,

앞서던 많은 이들은 증발한 듯, 아무도 없는 산길을 홀로 걸었다.

최소한 과체중의 그 여자보다는 뒤쳐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그녀도 이미 보이지 않는다.

금방 나올것 같았던 산장은 올라도 올라도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내려오는 이들에게 몇번을 물었다. 산장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약 2.3시간쯤..막막해진다. 40분쯤.. 15분쯤..인적조차 없음에 두려움이 덜컹~!

드디어 동물의 울음소리가 얼핏 들리는가 싶더니

반질반질한 이쁜 말 엉덩이 뒷태가 보인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서야 산장을 다 왔는 듯..

 

저녁에 뒤늦게 들은 말이지만,

산장까지의 길은 비단길이였다고. 산장부터 또레스 델 파이네 정상까지는

극심하게 가파른 돌길로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 올라갔단 얘기를

친구들로부터 전해들었다.

 

 

 

 

 

 

산장은 이미 내려오는 사람들로 꽉차 있었다.

입구 모퉁이 간신히 한자리 비어서 홀로 자리잡고 앉아

일행들이 내려오길 기다릴 생각이 막막해 지던차, 텍사스에서 왔다는 이 친구들이

함께 앉아도 되겠냐고 물어 온다. 속으론 은근히 반가웠다.말동무라도 할 요량으로.

웃어서 이쁘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네명의 밝고 젊은 에너지가 내게까지 전해져 우울모드에서 활력으로 바꼈다.

고맙게도 한국문화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고, 이것저것 물어 봐 줬다.

계엄령이 선포됐던 사실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했으나,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망칠까 피하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정치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파른 정상에서 내려오다 넘어져서 무릎을 많이 다쳤다며 보여 주기에,

발목을 다쳐 친구들과 끝까지 갈 수 없어 기다리는 중이라고

그들이 물어보지도 않는 핑계를 댔다.

산장에서 정상까지 얼마나 걸렸냐는 내 질문에 왕복 4시간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놀아주고 홀로 기다려야 할 내게 미안해 하며

인증샷 한장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혹독한 갱년기때 내가 가장 잘한일은, 

어딘가 미칠곳이 필요했기에 찾은, 탁구와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  

 

옆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사 오고 싶었으나, 화장실을 가고 싶었으나,

자리를 뜨면 내 자리가 없어질까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며 가벼운 스트레칭만 겨우 하면서,

아직도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막막함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저 멀리 계곡에서 쪼매한 동양인 아저씨가 잰걸음으로 온다.

발은 아직 뒤에 있는데 상체는 발보다 한 템포 앞서 있다. 내 룸메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자칫하면 달려가 껴안을 뻔했다.

이렇게 반가울 때가? 이렇게 소중할 때가?...그래 혼자보단 둘이 나아.

 

 

 

 

 

 

 

 

 

 

 

 

내가 홀로 기다릴 생각에 가장 먼저 정상에 올라,

인증샷 한장 제대로 찍질 못하고 날아 오다 시피 했단다. 친구들이 사진한장 찍고가라고

잡았는데도 그냥 내뺐다는 후문이다.가져간 간식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내 예상보다 1시간 반이나 빨리 왔으니..얼마나 날랐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또레스 델 파이네- 결국 이 앞에서 인증샷 한장 남기고 싶었던 내 꿈은 꿈으로 끝났고.

룸메는 아쉬워하는 내게, 낙오자가 된 내게, 위로인지 진실인지 모를~~~

공사장 파쇠석 같은 돌 구덩이에 빙하녹은 물이 조금 고여 있는게 다라고.

험난한 길에 비해 그다지 큰 감흥은 없는 곳이라고.."한다. 그말에 조금 위로가 되고,

이 아래서도 잘 보이는데 뭘~ 굳이 10시간씩이나 기어 올라가서 봐?!!!

말 같지도 않는 말로 응수했다.

산장까지 왕복 6시간- 이것만도 내겐 기적이였으니..

들국화가 잔뜩 핀 입구에서 인증샷 한장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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