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

아르헨티나 엘찰튼 2

하늘,바다, 그리고 나 2025. 4. 19. 16:51

 

내가 중도 포기한 라구나 또레의 목적지는,

사람이 지탱하기도 어려워 두 세사람이 껴안고서 걸어야 했던,

이 빙하의 계곡이였다고 한다.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중에 하나라는 피치로이.

아침 8시-일행들은 아침 일찍 각자의 점심 도시락을 챙겨

밤낮없이 미친듯이 불어대는 엘찰튼의 모레바람과 흐릿한 아침 날씨에도

피치로이로 오르기 위해 일찍부터 숙소앞에 모였다.

룸메의 점심은 오늘도 식은밥에 야채 몇가지 넣은 볶음밥과 사과,계란하나를 

챙겨주고, 난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 나왔다.

혼자서 뭐 할거냐는 친구들의 걱정에,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조용히 홀로 교양을 쌓아 보겠노라고" 아무렇지 않은척 말은 했지만,

또레스 델 파이네에 이어, 라구나 또레 트레킹 중도포기로

자존감 바닥이 된 내 기분이 정말 아무렇지 않기야 했겠는가??..

또 시도조차 못해보는 이 피치로이까지..

나와 반대로, 아침을 뚫고 출발하는 나를 뺀 7인의 용사들은,

자신감 충만해 마치 전투에 나가는 용감한 전사들 같다.

 

 

물을 사러 마트에 가야하는데 24시간 한결같이 

귀신 휘파람 소리같은것을 내며 불어대는 엘찰튼의 모레바람에

문을 열기조차 무서웠고,하루종일 혼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나?"

막막함이 스친다.

모처럼 한국과 시차가 맞아 언니와 잠시 통화를 하는데,

지구 완전 반대편에서 마치 옆에 있는 듯 선명한 보이스톡에 우린 신기해 하며..

짧은 전화를 끊고, 룸메가 들고 온 클래식 입문 책을 열었다.

바흐의 음악과는 별로 친분이 없는 나로선,

그의 일대기와 유투브로 음악을 듣자니, 대부분 종교음악인 그와의

감성교류가 어려워 금새 지루해졌고, 결국엔 수백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고

처음처럼 아름다운 쇼팽의 녹턴만 하루종일 풀 가동 시켰다.

클래식 입문한지 10년을 넘기면서도 아직도 초보단계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나-

제목도 없이 몇번몇번하는 꼭 클래식 음악의 넘버같은 걸 알아야 하나?..

그냥 들어서 좋으면 그만인거지~

 

바람이 잦아들길 기다렸으나,

밤,낮 상관없이,시간 상관없이 한결같은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모자와 스카프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어

오후 3시가 되어서 물을 사기위해 숙소를 나섰다.

거리엔, 피치로이 트레킹을 위한 젊은 여행자들만 간간히 상체를 25도쯤 숙이고,

바람을 뚫고 가는 모습만 보이고, 현지인이라든가 나이든 사람은 길에서 보기 어렵다.

아마도 그 이유가 이 미친 모레바람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단 15분쯤 거리를 가는데만 30분은 넘게 걸린 듯.

어제와 마찬 가지로 신선코너는 별 기대할 게 없었으나.

쌀쌀한 날씨에 산행후 수제비만큼 제격인게 없어,남은 밀가루로 수제비를 끓이기 위한

감자와 자두 네개.사과 두개와 물 두병을 현지 화폐 2,3만원쯤 남은것에

간신히 맞춰 사고.남미 여행이후 카드 복제 해 사용됐다는 경험담들에

남미에서 카드도 맘 놓고 쓸 수도 없었고, 미 달러는 아예 받지도 않았는데다가

고물가에 한 곳에서 쓸 돈만큼만 환전해 다녔던터라 팍팍한 살림에 여유가 없었다.

또, 그 모레바람을 뚫고 먹거리를 들고 숙소까지 오자니 녹초가 되었다.

 

 

 

일행들은 숙소를 나선지 11시간만에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는데,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찰지게 반죽해 놓은 밀가루를

뜨끈한 수제비를 끓여 먹으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니, 반죽해 놓길

내심 기대했다며 고마워 한다. 산행도 못 따라갔으니,

노는 손에 이거라도 해야한다는 배려보다는 의무감이였다.

 

그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엘찰튼은, 두 번의 트레킹 포기로

그 무지막지한 바람의 기억만 내게 남겼다.

엘찰튼의 인증샷이 아닌, 인증바람을 남겼어야할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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